고성에 장마가 오다-제주도 같은 바람
2022. 6. 27
장마철이다
고성에도 장마가 왔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가 잠시 멈췄다가 그리고는 해가 약간 비출 듯했다
장마라던데...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하늘을 보다 보면
영락없이 비가 쏴하고 내린다
바람은 단짝이라도 온 듯 신이나서 더 난리다
2층 마당에 내 놓은 나의 사랑하는 나무와 화초 친구들이 몸살을 앓는다
집안이 너무 좁아서 도저히 안으로 들여놓을 수는 없고
벽에 기대어 주거나 서로 모아서 묶어 주거나
비를 덜 맞게 처마밑에 졸졸히 밀어넣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안타까이 쳐다보고만 있다
미안하다
'이것만 이겨내자! 이겨내고 나면 더욱 강해질거야 새로운 잎사귀들을 달고 쑥쑥 자라오를거야!'
집밖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비바람이 치는데
아침 밥을 하고 있는 우리의 쿠첸은 따뜻한 김을 뿜어 내고 있다
고성에 온 뒤로 새벽같이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밤이 너무 길어서이다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나니
각자도생하듯 자기가 제일 편안해하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러려고 고성에 왔으니
그러렴...
밖을 내다보니 바람은 여전하나 비는 거의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음...가장 약한 빗줄기. 스프레이로 뿌리는 정도라면 알맞겠다.
나도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비바람 속에 산책하는 것!
아니, 비는 조금 덜 오는데 바람만 많이 부는 길을 걷는 것!
우산을 들고 재빨리 산책을 나섰다
남편은 어딜가냐고 의례적으로 묻기만 할 뿐 막지는 않았다
고성에는 예쁜 집들이 많다
집주인들은 정말 고성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감도 대단한 것 같고
집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여유와 힘이 있어보였다
가만보니
지금 내게 심하게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어보이는 게.
산책하다 만난 이 집은 더욱 그렇게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하얀 철재 대문과 담장이 있고
친정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능소화가 아낌없이 흐드러져 있다
걷다보니 여러길이 만나는 교차로 쯤에 서 있었다
더 가보자하는 욕심이 생겼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수하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거기에는 나를 고성으로 오게한 두번째 장소가 있었다
'고성 수하리 유수지 공원'
슬세권이라 생각하여 크록스 비슷하게 생긴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
비도 오고 하니 물빠짐이 좋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거의 공원에 다와가는 중에 산책을 포기를 해야했다
바람이 불어도 너무 불어 거의 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우산을 접을까도 했지만 그러자니 비가 그냥 맞을 비가 아니라서
온몸이 젖는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산책카페'라고 동그란 간판을 달고 있는 버섯같이 생긴 커피점이 있었다
아마 내가 첫손님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카운터에 계시는 남자분이(주인 같기도 함) 커피밖에는 아직 안된다고 했다
나는 커피를 달라고 했다
그게 목적이니까
창밖은 비와 안개와 습기에 푹 젖어있는데
까페안은 보송보송 아기분을 발라놓은 아기 엉덩이처럼 쾌적했다
습한 냄새도 없이 약간의 풋풋한 향기도 나는 듯해서 느낌이 좋았다
아늑하고 편안했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들고 책꽂이에 있는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나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다 읽지는 못했던 책이다
내가 그랬었구나...
음...
남편에게 의존안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시간 생각나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의존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감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밥먹고 나서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다는 남편을 불러냈다
비바람때문에 집에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행복감을 같이 느끼고 싶다는 이야기는 절대 쑥스러워서 못하겠다
오느라 수고한 그에게 카페오레 한잔 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