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우주와 나

천상의 예언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ANJOO 2016. 9. 25. 20:42

 

아침부터 '천상의 예언'이란 영화를 다운 받아봤어요

먼저 그 일요일 아침보다 나만의 시간속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음...이 영화가 끝나는 장면에서 제가 느낀 것은 동화' 파랑새' 를 읽은 느낌이었어요

마지막 부분에 그 신부님이 하는 말처럼 이젠 예언이 필요없다고 우리 가슴 속에 다 새겨져있다고?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먼 세계를 돌아돌아 예언과 진리를 찾는 모험을 하러가지만 실상 그것은 우리 가슴 속에 진작부터 빛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 '화두'라는 말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는 한 단어를 골백번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쌓고 또 허물며 그것의 본질을 깨닫으려 하지만 실상 그 깨달음을 위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됨을,

단지 기억해내기만 하면 됨을 느껴봅니다

영화를 막 다보고난 뒤라..정리가 되지 않은 글이라서...좀 부끄럽지만...그래도 좋네요^^

 

신나이 친구 한채영

 

영화 '#천상의예언#에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아주 친숙한 느낌을 느끼게 되고 전생에 어떤 인연에 대한 찰라의 기억이 스쳐가게 된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그 여자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건네는데, 잠시후 그 여자는 어떤 기운을 느끼면서 자리를 피하게 된다. 약간 당황한 남자에게 그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여성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다.

남자의 오라장이 상대 여성의 오라장으로 침범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상대 여성에게 불편함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사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관계의 현실을 분해하고 분해해 들어가 보면 그 안에는 결국 에너지의 주고 받음. 다시 말해 에너지를 얼마나 빼앗아 오느냐 또 얼마나 뺏기지 않느냐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누가봐도 싸움인 관계도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싸움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이러한 에너지 쟁탈을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속고 속이는 고도의 교묘한 에너지 싸움도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종교지도자와 신도간의 사랑...

그놈의 사랑의 정체를 무수한 소설과 영화와 노래와 광고 속에서 얼마나 그려내고 동경하고 꿈꾸게 하면서 다루고 있는지. 그래도 아직까지 그놈의 사랑은 뭔가 속시원하지 못하다.

오로지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의 힘이 발현되어지고 그래서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저절로 밖을 향해 나오는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상태는 사실 '널 사랑해' 라기 보다는 '나좀 제발 사랑해줘' 의 더 그럴듯한 교묘한 포장지일 뿐이니.

그래서 지금은 그러한 포장지에 대해 왠만큼 느끼고 또 알고. 그러면서도 속고 어쩔수 없이 나도 속이고ᆢ

사실 지금 우리는 못먹어서 허기진다기보다 그 속고 속이는 미화된 사랑이라는 가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탈진해 심하게 허기져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 과정을 내 안으로 깊이 숙고하고 또 숙고해서 들어가 보지 않으면 그 환상의 수레바퀴에서 내려오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랑과 한 세트로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배신'이라는 복병과의 만남을 피할수 없기 때문에.

 

사랑의 포장지 뒤에 숨은 사랑의 에너지 쟁탈전은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한 수용과 진정한 첫번째 사랑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증폭의 에너지로서의 사랑이 갖게 되는 다음 트랙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오로지 내 안에서 깨어나는 신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를 보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가식없는 태도와 주어지는 과정을 걸어간 만큼,

딱 그만큼만 깨어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