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보는 에니어그램 첫 번 째
관심들이 있으신거 같애서 첫번째 부터 다섯번째 까지
올립니다..
나의 성격은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정서와 시시각각 공명을 이루며 변한다.
잠재된 성격들은 제대로 활용하려면 내 안에 어떤 색이 있는지를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꼭 한 번 던져봐야 하는 문제다.
외부 현실에 너무 초점을 두면 내면의 자아가 위축되게 마련이다.
내부 자아의 요구에만 너무 충실하면 외부 현실과의 소통이 단절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미움 받을 용기를 지녔음에도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현상은 의존심과 외로움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은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 외로움은 단 하나의 인격으로만 살아갈 때 나타난다고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인격들을 유연히 활용할 수 있는 자아가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
해리현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심리 기제다.
불쾌한 감정 경험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프로그램인 것이다.
자아의 확장은 우리가 세상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야와 관점을 확장시킨다.
실존의 추축과 직접적인 경험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내 안의 낮선 다중성을 발견한다는 건, 그만큼 내안의 자아가 확장되었다는
뜻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아를 찾는 것이다.
단 하나의 모습에 갇히지 말고 더 큰 자신을 발견하라.
하나의 인격과 진짜 나를 착각하지 말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지 마라.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한 사람의 본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다.
전문가일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일한다.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은 다양한 인격을 가질 때 커진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에 맞는 인격을 바꾸도록 노력하라.
적성검사, 성격검사의 결과에 얽매이지 마라.
다중 인격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1984년. 에 처음 소개된
다중 인격은 정신 병리적 현상을 일컫는 말로 자신도 모르는 다른 인격이
나타나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주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오고 있다.
각 사람에게 복수 또는 그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고 그 중 하나의 인격이
표출 되었을 때 다른 인격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거나 그 다른 인격 역시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다중인격은 정신적 장애가 아니라 내 안의 다른 가능성을 찾는 지름길이다.
자기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인격과 어떤 성향이 인격이 존재하는지를 자각하고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서 어떤 인격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의식적으로
판단하면 순간적으로 인격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이런 인격교체를 하는데 있어서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자
시스템이다.
9개의 성격을 그 때 그 때 상황과 환경에 맞게 적절히 교체사용 할 수 있다면
직장, 가정, 사회에서 큰 불편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와 개인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때 전혀 다른 인격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관성이란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의 인격만 사용하게 된다면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강한 8번의 8번의 성격만 고집한다면 과연 성공적일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즉, 에니어그램에서는 어느 유형이 좋다 나쁘다. 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집에 있는 나와 직장에 있는 나, 학교에서의 나는 당연히 같을 수 없다.”
똑같이 생황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물어보라.
같다면 이상한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여러 인격을 통해 숨겨진 가능성과
재능을 꽃피우며 세상을 바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폴 매카트니, 스즈키 이치로, 토니 불레어 등.
이 중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히 대응했던 사람은 성인이라 일컫는 공자이다.
이런 면에서 공자를 기회주의자라고 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렇듯 인간은 저마다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인격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하게 바꾸는 존재다.
다만 그 방법을 모르기에 하나의 인격만을
진짜 나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의 성격유형은 다중인격의 긍정적 기능을 활용하여 자아관리,
즉 자기를 찾는데 유용한 프로그램이자 시스템인 것이다.
에니어 그램은 프로그램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시스템화 되지 않고는 통합이란 있을 수가 없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에 맞춰 다양하게 인격을 교체해가며 대처하는 방식
곧 다중인격의 관리인 것이다.
부정적 인식이 아닌 다른 의미로 바라본다면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 안에 숨은 여러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에서 자신의 기본유형이 자신, 자기라고 하지마라.
하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한 가지의 모습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기본유형은 단지 기본일 뿐이다.
남들에게 보여 지는 자신이 이미지일 뿐이다.
자신이라고 믿는 순간 고칙화가 발생한다.
실지로 자신이 추구하는 행동들은 기본유형보다는 날개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아라.
기본유형이 1번이라면 1w2나 1w9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기본유형은 자신이 말을 안해도 조금만 생각하면 상대방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기본유형이 자신이라고 믿는 순간 동일시를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다.
구르지에프가 말한다.
조화로운 학교의 창조성은 동일시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쇼 라즈니쉬가 말한다.
다른 것을 다한다 해도 결코 동일시는 하지 말라고.
유동성을 가져라. 자연스러워져라. 라고
안나프로이트가 방어기제라는 논문에서 다른 방어기제들보다 동일시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부분이나 투자한 점을 이해하라.
노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러워진다는 점에 유의하라.
유동성을 가지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모든 방어기제는 긍정적인 것이 없다.
승화가 긍정적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아니다. 승화를 하여 어떤 보상을 받는다 해도 그건 결코 자신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워져라. 그것만이 오로지 자신이다.
“에니어그램은 9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체이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기본유형만이 아닌 더 나은 큰 자아를 길러 내면의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길러라.“
오쇼의 명상 1-4
빛의 샘, 그 황홀한 일별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사이에에 찾을 수 있도다.
숨이 들어오고, 들어온 숨이 나가려고 하기 직전 바로 거기에
지복이 깃들어 있도다.
숨은 들이쉴 때 아래에서 위로 반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그리고 내쉴 때 다시 위에서 아래로 반원을 그린다.
이 두 개의 회전점을 통해서 불생불멸의 그 자리를 깨달을 지어다.
들이쉬고 내쉬는 그 찰나의 사이에
호흡은 에너지가 없으면서 또한
에너지로 가득찬 그대의 중심에 닿는도다.
숨을 완전히 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또는 숨을 완전히 들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호흡의 이 우주적인 멈춤 속에서 에고는 사라진다.
ps: 사실 오쇼의 명상은 아니라 시바의 명상이다.
시바의 이름을 빌러 오쇼가 강의한 내용이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은 아주 중요하다.
이 시간과 공간을 우리는 고독이라고 부른다.
고독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하는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상태이자 자신에게 더없는 선물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쇼윈도우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에니어그램 두 번 째
한가지의 메시지를 갖고 청중들에게,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각기 다른 호소력 있는 말을 한다.
처음부터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톤으로, 같은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여러 형태의 내가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스치고 있을 뿐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각 유형마다 다르다.
한 주제를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나,(1번 유형)
상대에게 뭔가 힘,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2번 유형)
힘을 주어 강조하며 나의 가치를 높이고 인정을 받으려는 나,(3번 유형)
뭔가는 남과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전달하는 나,(4번 유형)
주제에 대한 논리와 정보를 총동원하여 전달하는 나,(5번 유형)
이 주제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며 전달하는 나,(6번 유형)
즐거운 분위기로 유쾌하게 어필하려는 나,(7번 유형)
강한 톤으로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나,(8번 유형),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던하게 전달하는 나,(9번 유형)
파워포인트 한 장을 작성하더라도 개인의 특성은 나타난다.
한 장 한 장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작성한다.(1번 유형)
이 한 장이 청중에게 어떤 도움을 둘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2번 유형)
이 한 장으로 어떤 성취감을 맛보고 인정을 받는가를 생각한다.(3번 유형)
자신만의 방법으로 뭔가는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작성한다.(4번 유형)
화면만 보고도 충분한 설명과 논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작성한다.(5번 유형)
청중들의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면 작성한다.(6번 유형)
이 한 장에 청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작성한다.(7번 유형)
강한 메시지를 던져 내 편으로 끌어드릴 수 있도록 있도록 작성한다.(8번 유형)
편안한 가운데 청중들의 경청을 할 수 있도록 작성한다.(9번 유형)
이 내용만 이해해도 에니어그램의 9가지 성격유형은 대략 끝이 난다.
이렇듯 비전이나 전략제시, 인생 등 그 주제에 따라 그에 맞는 인격과
자신의 모드가 바뀌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 즉 한 사람의 인격이며 성격인 것이다.
누구라도 가능한 모드인 겻이다.
선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 상황에 맞는 선수를 찾아내어 교체를
인격 교체(유형을 바꿈)를 하면 그게 바로 선수인 것이다.
제발 자신의 1번 유형이라고 말하지 마라.
9가지 유형 중에서 단 한 가지 유형만 사용하고 있다는데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가수들은 슬픈 곡과 즐거운 곡이냐에 다라 각기 다른 인격체를 사용한다.”
드라마에 열연하는 연기자, 연예인들은 이렇게 다 다중인격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프로들은 그 압박감을 느끼는 자신과 그것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상황에 따라 적시적소에 교체해 가면서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성인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모든 상담사들도 똑같은 말을 한다.
“관찰자가 되라. 주시자가 되라 합니다.”
기본유형은 제1의 관찰자 그냥 자신입니다.
교체해서 쓰는 또 다른 나는 제2의 관찰자입니다.
에니어그램에서 보면 날개나 통합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통합 날개 부분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고.
사실 저는 에니어그램의 통합, 분열 부분은 오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통합 중의 한 부분은 이렇다.
날개에서 통합을 찾는다.
1번이 기본유형이라고 하면 날개는 1w2, 1w9이다.
그런데 날개를 가진 새들을 보자.
2나 9는 어깨에 불과하다. 그 어깨가 대단히 중요한건 맞는 말이다.
이런 날개는 어떨까?
1w2w3w4w5, 1w9w8w7w6
이렇게 되면 모든 유형을 다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요 날개인 2번, 그 다음은 반대쪽의 날개 9번,
우선순위는 없다. 양쪽 날개의 어깨인 것이다.
그 다음은 1w2w3, 1w9w8 3과 8은 그 다음으로 사용하는 날개이다.
새들의 날개에서 어깨 다음 부분이다.
그다음은 날개의 중간지점, 그다음 지점 날개의 맨 마지막 지점
사람으로 보면 손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다 사용되면 이 자체로 통합이 되는 것이다. 즉 시스템인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프로그램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에니어그램 도형에서 왜 9번의 가운데 정상에 있을까요?
다른 번호가 가운데에 있으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길.
애초의 에니어그램 도형에는 숫자는 없었답니다.
이것을 안다면 에니어그램을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순히 에니어그램을 성격심리학으로 보시면 답이 안 나옵니다.
현대의 에니어그램은 고대의 지혜(동양 뿐 아니라 서양의 지혜, 철학)와
현대 심리학의 결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에니어그램은 철학 그 자체였답니다.
보통은 여기까지지 이야기를 합니다.
한 단계를 더 나아가면 제3의 관찰자가 있습니다.
이 두 개의 관찰자를 바로 보는 또 다른 나, 바로 제3의 관찰자입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두 가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
이 세 가지의 관찰자는 모두 자신입니다.
이 제3의 관찰자가 진정 자신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쇼 라즈니쉬-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못하고 영원히 못할 수도 있지만.
에니어그램 명상을 통해서도 분명 가능하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언덕 위의 파수꾼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대는 육체도 아니요. 감정도 아니며 사념도 아니다.
단지 순수한 관조 그 자체일 뿐이다.“ -구루지에프-
“그들은 행위 속에서 행위라는 대상을 지켜보고 있고
우리는 행위 속의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행위의 대상이 움직이든, 멈춰 있든 그 지켜본다는 절대 명제는 똑 같았다.
춤을 추는 자가 사라지고 나면 춤만 남는다.
춤조차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단지 지켜봄만이 있었다.
여럿이 춤을 추고 있었지만 한 사람이,
아니 하나의 깨어있는 의식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춤조차 사라진 그 자리에는 오직 침묵만이 난무했다.“
-구루지에프 신성무(무브먼트)-
이 구루지에프의 신성무로 (카네기홀에서 공연)인해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는 말도 있다.
“이 세상에 머물되 이방인으로서 혹은 지나가는 행인으로 존재하라.
영원한 삶이 앞에 있는 것처럼 이 순간을 살되
다음 순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삶을 살되 여전히 관조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몰입하되 언덕 위의 야경꾼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모하멧-
오쇼의 명상 5-9
미간에 집중하고 마음을 사념의 일어나기 전의
상태에 머물게 하라.
정수리까지 호흡의 정수로 가득차게 하라.
그리고 정수리에서 빛이 쏟아지듯
호흡의 정수가 쏟아지고 있음을 느껴라.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
항상 유념하라.
이 수련을 계속하면 머지않아 그대는 다시 태어나리라.
만져지지 않는 호흡의 정수는 미간에 있다가
그대가 잠드는 순간 가슴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꿈의 세계를 넘고 죽음의 세계까지 넘어간다.
지극한 경배와 헌신으로 호흡의 두 교차점에 집중하라.
그리고 아는 자를 알아라.
죽은 듯이 누워 있으라.
화가 날 때 그 분노 속에 그대는 머물러 있으라.
속눈썹 하나 움직이지 말고 응시하라.
빨고 싶으면 빨아라.
그리고 빠는 자로 남지 말고 빠는 그 자체가 되라.
ps : 이 명상법은 피타고라스의 40일간의 수련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산에 간다.
숲을 보는 사람이 있고 나무를 보는 사람이 있다.
길을 보는 사람이 있고 계곡을 보는 사람이 있다.
정상을 보는 사람이 있고 능선을 보는 사람이 있다.
풍경을 보는 사람이 있고 사람만 보는 사람이 있다.
꽃을 보는 사람이 있고 풀을 보는 사람이 있다.
인재시교 因材施教이다.
그 사람에 맞게 가르친다.
상대에 따라서 설법한다. 의뜻이다.
논어에서 공자님 말씀이다.
<칼 융 심리학 밴드 김성철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