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폭우가 내렸다 중간중간 비가 그친 날도 있지만
지난 몇년안에서는 시간당 강우량이 제일 많았던 것같다
얼마나 빗줄기가 강하고 굵은지 우산은 무용지물이고 한날은 엉덩이까지 젖어 온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빗속에서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지켜내야할 게 뭔가 생각했다 가방안에 든 지갑? 소지품 가방? 도장, USB들, 이어폰, 서류들, 핸드폰?
다 소중했다 온 몸이 다 젖어도,
젖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가방안에 오롯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지켜냈다
비록 바지에 속옷까지 다 젖어 지하철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서서 왔지만
방수가 안되는 천으로 이루어진
내가방 속 물건들은 비 한방울 젖지 않았다 다행이다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때쯤인가...
비오는 날,
자녀들을 많이 두었고 항상 직업이 있었던 우리 엄마는
내게, 아니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우산을 한번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엄마는 하나인데
우산을 가져다 줘야 할 자녀들은 5~6명이 넘어가고, 저녁때가 되어야만 집에 올 수 있는 직장을 다니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어린 마음에
엄마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우산을 가져다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엄마가 우산을 한번만이라도 가져와서 그 우산을 함박 웃음을 웃으며 받아들고는 비에 젖지 않고 집에 와보고 싶었다.
우리집은 산중턱이라 평지의 학교에서 30분이상은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지금 기억나는 그날도 비가 갑자기 억수로 내렸다 수업시간에 자꾸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학교가 파하고 나서 학교 현관에서 아이들이 다 가도록 서 있었지만 엄마는 안 왔다
이미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든 것은 사실이다
나말고 동생에게라도 엄마가 우산을 가져가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가진 것 중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그때는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나는 교복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나의 가방을 꼼꼼하게 덮고는 빗 속에 뛰어들었다
집에 까지 오면서
나는 흠뻑 젖어 그때도 지금처럼 온몸에서 물이 줄줄 흘렀지만
나의 가방만은 거의 젖지 않았고, 그속의 책이랑 필통이랑 일기장이랑 모두 무사했다
그랬다 나는 가방이 제일 소중했다
비 안오는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항상 못에 단정하게 걸어두었다
나는 그대로다
40여년이 지난 이야기인데도
신기하게도 지금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그 긴 시간들이 한순간 같다
폭우 속에서 시간을 뛰어넘은 내 자신을 발견했다
흐트려지지 않으려는 내 모습,
나 아닌 다른 것을 지켜내려고 내 자신은 그냥 내버려 두는 습관,
혼자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의 고독,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를 구원할 그대, 달라지지 않은 나, 감당하기 어려운 폭우...
안타깝게 부산역 근처 지하차도에서 급류에 휩쓸려 돌아가셨다는 세 분의 명복을 빌며,
나는 오늘도 나를 끌어 안고 폭우를 견뎌내며 살아갈 것이다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오면 가방으로 내 머리라도 가려서 내 자신을 더 소중하게 대우해줘야겠다.
폭우 속에서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내 자신이니까...
아무도 기다리지 말자...
아무에게도 기대지 말자...
우산 똑바로 쓰고 빗 속을 뛰는 거다.
https://smartstore.naver.com/azalea5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생일 (0) | 2020.08.18 |
---|---|
감자 한 사발 (0) | 2020.07.27 |
나는 무엇인가? (0) | 2020.07.21 |
인생의 코너를 돌며 (0) | 2020.07.02 |
뭐 먹고 싶어? 장어구이 (0) | 2020.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