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1
혼자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고성에서 남편도 출근하고 아들도 어디를 가고 나니 오롯이 나혼자다
나에게 유일한 휴일이 일요일인데 혼자보내는 일요일은 왠지 낯설고 막막하다
며칠전 임시보호로 맡게된 아깽이도 사무실에서 혼자 놀고 있겠지
아깽이나 보러 갈까?
그래도 휴일까지 직장 사무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음...아직 운전을 잘 못하니 차를 끌고 나가지도 못하고
고성 농어촌 버스를 타볼까나?
마땅히 목적지도 없는데 어느 버스를 타지?
일단 가보자!
농어촌 버스 간이 대합실에 가서 제일 먼저 오는 걸 타자!
돈키호테같은 나의 모험심이 또 발동하였다
1층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심어놓은 코스모스가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렸다
빠꼼히 내민 얼굴로 나에게 잘다녀오라고 한다 ㅋㅋ
간이대합실에 도착했다
오늘이 장날이라 그런지 벌써 장을 다본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
어르신들 틈에 서서 어느 버스를 탈까 고르고 또 골랐다
지역명이 생소하여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도 잘 모르겠다
난감하였으나 그냥 가보는거다 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눈에 익은 '배둔'쪽 버스 55번을 탔다
다행히 버스는 15분정도만 기다리면 온다고 했다
싱그런 들판길을 옆으로 두고 버스는 꽤 속도를 내는 것 같았다
금새 배둔에 도착했다
내가 아침 9시50분쯤의 시간에 배둔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버스의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제발 회차지에서 바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죽기야하겠나? 하고 생각에 겁이 나지 않았다
버스는 꽤 오래 달렸다
그러나 중간에 거의 서지도 않았고 타는 사람도 두명밖에 없었다
산골 골짜기 깊은 곳을 가는 것처럼 산등성이를 달리기도 하고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을 하염없이 가기도 했다
버스 승객은 나를 포함하여 4명
그 중한 사람은 버스 관계자 같았다
드디어 회차지에 도착했다 솔직히 회차지인지도 몰랐다
약간의 공터였는데
버스기사님이 정말 빠른 속도로 방향을 180도 바꾸고는 또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셨다
다행이다~
산골짜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내리게 될까봐
돌아오는 버스가 제대로 없거나 오래 오래 기다려야 될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젠 앉아만 있어도 출발한데까지는 다시 갈 수 있는 것이다
일상으로,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버스는 마치 고성을 일주를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가다보니 눈에 익은 곳이 나타났다 당황포였다
여기는 공룡테마공원 구경하러 몇번 와봤던 곳이라서 반가웠다
버스는 다시 달려 '정다운' 배둔에 도착했다
배둔정도면 택시를 타고서도 고성읍으로 갈 수 있으니 이젠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배둔에서 내렸다
천천히 걸어서 배둔 거리를 구경하며 산책하고 싶었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떡볶이나 국수 가게가 있으면 이른 점심이라도 먹을까 싶었다
매우 덥고 햇살은 따가웠지만 다른 동네에 와서 골목마다 누비고 다니는 산책은 재미가 쏠쏠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하나 없다
그래도 집집마다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 흔한 티브이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개도 한마리 없다
배둔시장에 가보았다 장날이 아닌지 몇몇 상인뿐 가게가 거의 문을 닫았다
집이나 가게나 사람이 있고 불이 켜져 있어야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사람과 불이 없는 집은 말라버린 명태껍질처럼 아무 감정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쉽게도 커피 한잔 마실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다시 배둔 버스터미널로 갔다
갔다기보다는 쏘다니다보니 거기를 발견했다
거기서는 고성읍 군내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고성터미널에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 11시 30분이었다
아까운 일요일이 참 더디게 간다
아이고 모르겠다 샤워나 하고 낮잠이나 자야겠다
참고로 나는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사람이다 시간이 아까워서말이다....

'고성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월리 바람개비길 트리케라톱스 탄생기 (0) | 2022.08.25 |
---|---|
흐린날의 산책 (0) | 2022.08.25 |
고성은 구름 부자 - 바다를 보듯이 (0) | 2022.08.15 |
아들 자취방 구하기 (0) | 2022.08.15 |
꿀같은 일요일은 정말 바쁘다 (0) | 2022.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