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4
아들이 결정을 내렸다
지난 6월말에 대학 기말고사를 치고나서
엄마 아빠가 이사온 고성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고 한다
대학 1학년만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고 나니,
2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
말 그대로 맘대로 되는 것이 없어서 아들도 많이 혼란스러웠나 보다
PC님하고만 많이 친하게 지내며 자기 방과 PC방만 오가는 시간들을 보냈었다

나는 앞서 두 딸들을 키워봤음에도
또 조바심을 치며 아들을 걱정스런 마음과 눈으로 쳐다보곤했다
말괄량이 두딸보다 말없는 아들 하나가 키우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래도 아들은 고맙게도 다른 데로 빠져버리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부산을 뒤로하고 우리가 있는 고성으로 와 주었다
며칠동안은 아는 PC방도 없고 낯설기만한 고성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에서만 뒹굴거리더니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알바천국'을 뒤지고 당근의 알바소식을 검색하더니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대었다
그러나 단기간의 알바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언제 전국을 돌아보는 여행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장기간을 요구하는 알바는 전화도 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한 보름을 그렇게 보내다가 드디어 찾은 알바는 '아이스크림 냉동공장 상하차'일거리였다
새벽 6시50분까지 대가면 구석부분에 있는 곳까지 출근해야 하며
영하22도의 냉동공장에서 쉴새없이 아이스크림 박스를 올렸다내렸다 한다고 했다
거의 온실 속에 화초같이 편안한 생활을(군대도 코로나 군대를 다녀와서 무척 편했다고 함) 하던 아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또 이 엄마는 걱정 또 걱정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정말 대견하게도 잘 버티어내었고
도리어 자기 일자리가 시급도 높고 빨리 퇴근하여 꿀알바라고 까지 했다
우리 어린 아들이 언제 이렇게 멋진 장정이 되었나 싶어 정말 대견하고 기뻤다
시간이 흘러 8월초가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대학 2학기에 등록할지,
아니면, 대학에 꼭 등록하여 학업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생길 때까지
휴학하고 사회생활을 더해 볼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적어도 8월 10일까지는 결정을 보아야
그 결정에 대한 대한 후속의 일들을 계획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10일 밤에 내게 '엄마, 대학에 돌아가기로 했어요 2학기 등록할래요!'한다
아들이 그 힘든 일을 하면서 나름 심사숙고한 결정이었겠지만
나는 순간 아들하고 헤어져야한다는 섭섭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그맘을 감추고
'아이고 우리 멋진 아들이 결정을 하였구나 그래 대학에 돌아가서 열심히 한번 해볼거니?'하고 물었다
아들은 씌익 웃기만 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 친구도 생겼다고 했다

오늘은 아들 자취방을 구하러 부산가는 날이었다
아들의 대학 주변의 원룸들을 직방에서 보고
그중 몇 개를 선정하여 직방에 나와 있는 부동산중개인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아들이 너무 늦게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지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 했다
아들이 운전 하는 차를 타고 편안히 다녀오려 했는데
하는 수없이 나혼자 고성터미널에서 부산가는 버스를 탔다
혼자가게 된게 좀 속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혼자 당일 여행을 가는 것처럼 설레이기도 했다
사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냉정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고맙게도 부동산 중개인은 나를 지하철역까지 마중나와주었다
정말 콧구멍만한 방에 침대하나 씽크대 한칸 놔두고 원룸이라고 하는 곳이 많았다.
그 작은방에 낡은 옷장하나,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으면서도 월세는 30만원을 육박하거나 넘었다.
돈도 돈이지만 덩치가 큰 아들이 이런 공간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참 답답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자신이 한 결정이니 이보다 더한 악조건에서라도 아들은 견디어 내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최대한 좋은 조건의 방을 선정하였다
중개인이 참 친절하고 꼼꼼하여 걱정스런 맘이 많이 없어졌다
책상과 침대가 있어 큰 짐은 안 옮겨도 된다
정말 손바닥만한 베란다가 있어 빨래도 널 수 있고
무엇보다 환기가 잘 될 것 같다
정말 간이 부엌이다!!
세탁기도 있으니 빨래도 가능하다
앞에 살던 학생이 빨래 건조대도 두고 갔나보다 고맙다
방 창문에서 본 바깥 풍경
그래도 옆 건물 담벼락에 밀착된 창문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제법 뷰가 좋다
아들은 사진만 봤지만 맘에 든다고 했다
중개인은 27살정도의 총각이었는데 내가 아들이 PC방을 너무 좋아한다고 걱정을 하니까
아들은 술담배도 일절 하지 않고 PC만 좀 많이 하는 것이기에,
꽤나 정상적이고 도리어 다른 청년들에 비하면 착실하고 좋은 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을 믿어보라고 했다
그말을 들으니 한결 맘이 편해지고 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 것이 미안했다

방을 결정하고 그냥 고성으로 내려오기가 허전해서
부산 단짝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불족발에 맥주한잔을 마시며 오랫만에 수다를 맘껏 떨다가 돌아왔다
밤 10시가 다되어 고성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들이 차를 끌고 마중을 왔다
나는 아들에 할말이 많았지만 다 생략하고
'야호 아들이 엄마를 데리러 와주니 정말 신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들은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으면 맛있는 거 사줄까?하고 물어왔다
'그냥 가자 집으로 가자 집이 제일 좋다!'하며 밤길을 달려 돌아왔다
이제 아들을 분가시키려면 준비할 게 많다
생전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될 아들을 위해 꼼꼼하게 살림살이를 챙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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