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충무동에 있는 **동물병원에 취직한 적이 있다
자갈치가 가까운 충무동은 해질녁엔 방향이 서쪽이 아닌데도 하늘이 주황빛을 띄며 어두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나는 갈 곳을 몰랐다
하루 종일 좁디 좁은 동물병원에서 60대 중후반의 원장님과 사모님 사이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 6시 20분쯤에 삐그덕 출입문을 밀고 나오면 마치 길잃은 아이마냥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다
그 느낌은 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도, 교우들이 거의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그 크고 텅빈 중학교 교사에서 혼자서 공부를 하곤했다. 그러다보면 경비아저씨가 호각을 불며" 어이 학생! 집에 가라 빨리! 나올때 불끄고 나온나!"며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주섬 주섬 가방을 챙기는 나를 두고 경비 아저씨는 먼저 손전등빛을 거두어 가버렸다. 나는 묵묵히 어두운 복도를 더듬거리며 빠져 나왔다.
애살이 많아서인지 공부로는 누구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서 그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홀로 남아 공부를 했지만, 나를 그 시간까지 잡고 있는 주요한 감정은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가족들과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특별 대우를 해주시면 해주셨지 내가 미움을 받거나 소외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비록 좁은 집에 많은 가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서로 우애있고 화목한 가족이었다.
그래도 가기가 싫었다 아니, 집에 갈 구실이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전쟁에 나가 획득한 전리품이라도 들고 개선장군처럼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도 특별한 일도 없는 날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가족들이 화목해도 나는 혼자서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아이였던 것이다. 말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6명이나 되는 자매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했고, 맨날 구석에 앉아 공부를 하든가 책을 읽곤 했다.
여자애들이 대체로 하는 공기돌 놀이(살구받기)나 고무줄 뛰기, 인형놀이는 도대체가 재미가 없었고, 또 자매들 사이에서 그 놀이를 잘 해내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은연중에 자매들이, 가족들이 나의 귀가를, 존재를 그리 반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또한 좁은 집의 구석에서 내 자신을 독서나 공부로만 지켜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뭐라도, 무슨 특별한 건수라도, 반갑거나 기쁜 소식이라도 들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았고 그래야만 나도 그속으로 들어갈 면목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집으로 돌아갈 이유에 허기가 져 살았는 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취직한 동물병원의 퇴근에서도 나의 생각과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 황혼이 내려지면 내 마음 갈 곳을 몰라 충무동, 남포동을 쏘다니다가 배가 많이 고파지면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그무렵엔 대학생때 하던 연애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끝이 나고 난 뒤라, 그 적적한 마음이 지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다. 허기가 졌다. 때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된지라 당연한 거겠지만 그 어떤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처럼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부산민주청년회'라는 모임에 가입하고 나서는 그 허기가, 그리움이 많이 감소되었다.
정의와 열정과 신의로 가득찬 모임 동료 회원들과의 그 이후 4년정도의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가슴이 채워지는 날들이었다. 가족보다도 더 끈끈한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모임에서 만난 남자동료 회원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후 애를 셋을 낳고 기르면서 직장까지 다니며 정신 없이 살다보니, 그 모임과는 서서히 멀어져갔다. 모임에 참석할 시간도 내기가 힘들었지만 거기서 만난 남편이 그 모임에 더이상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기때문이다. 내게는 소중한 모임이었기에 나 혼자서 애 셋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그 모임에 몇 번 쫓아 다녔지만, 모임 회원들과 내 자신에게 너무 힘든 일이라 서서히 거기에 참석하는 걸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이후로 다시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던 동물병원을 잘 경영해보려고 밤 9시가 되서야 퇴근을 했었다. 그 시절엔 저녁 황혼도 적적한 마음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잠깐의 짬도 없이 퇴근만 하면 집으로 내달렸다. 어린 삼남매가 내가 귀가 할 때까지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집에 와서 애들 밥먹이고 씻기고, 공부나 숙제 점검하고, 재우고 집안일을 해치우다 보면 새벽 한시가 넘어가곤 했다.
이미 먼저 잠든 남편과 함께 쓰는 침대는 어둡고 싸늘하고 비좁고 불편했다. 같이 쓰는 침대이기는 하지만, 삼팔선이라도 그어진듯 완전한 두개의 침대였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돌아누워 자는 남편에게 끊임없이 압박이나 질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적적하고 허기가 진 나날들이었다. 하루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나 힘든 일들로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그럴 때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죽여가며 한참을 울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완전한 '남 편'이었고, 언제 뒤돌아서서 자기 길을 가버릴 지 모르는, 정을 줘서도 안되고 정을 주지도 않는 대상이었다.
동물병원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환하게 불이 켜진 다른 집들 칭문을 바라보면서, 나는 애들에게 저런 따뜻하고 환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눈물이 나곤했다. 반면에, 그 환한 불빛 속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포근히 안아줄 사람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는 '애들에게 풍족한 생활을 제공하고 공부도 많이 시켜주려면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직장 다니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애들이 나를 기다려 줄 알았다. 엄마인 내가 돈을 열심히 벌고 나서 애들과 여유로운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은 아이들로 남아있어 줄줄 알았다. 우리가 흔히 일으키는 중대한 착각인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일하다 돌아서 보면 이만큼씩 자라서, 몇 번 안돌아봤는데 벌써 성인이 되어버렸다.
정말 안타까웠다. 이뻐서 안아주려고 해도 애들은 '왜 그래?'하며 거부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해도, '나 오늘 약속있어'하며 늦게 까지 돌아오지도 않고, '엄마랑 같이 거실에서 재밌는 시간을 좀 보내자'해도 방문을 닫고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애들은 바쁜 엄마의 등뒤에서 훌쩍 다 커버렸다. 엄마보다는 자기들만의 세계가 더 좋아져버린 것이다.
어쩌나 ...좀 더 안아주고 좀 더 뽀뽀해주고 좀 더 같이 있어주고 싶었는데 그 중요한 시간들을 놓치고 말았다. 정말 짧은 시간들이었다.
이것만 해놓고 애들을 돌보아야지, 저것만 해결하고나서 애들과 놀아줘야지 하다가 그 시간들이 다 가버렸다
내가 많이 안아주지 않아서인지 애들은 껴안는 것을 싫어하고 같이 걸어가도 팔짱한 번 끼질 않는다.
내가 과연 무얼하고 살아온 것인가? 내게 무엇이 그리도 중요했던가? 내가 애들에게 어떤 잘못을 한 건가?
이젠 큰 딸도 직장을 다니며 주말마다 친구들과 어울리니 같은 집에 살아도 거의 볼 수가 없고, 작은 딸은 대학교 2년때부터 자취를 한다고 집에서 멀지도 않은 대학교 앞에서 방을 구해서 살고 있고, 막내인 아들은 군에 들어간지 1년이 다되어 간다.
부부이면서도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던 우리 부부는, 다시 찾아온 우리 둘만의 기나긴 시간을 어찌 보내야할지를 모르고 있다. 남들은 새로운 신혼이라지만, 살아오면서 서로의 가슴에 너무나 많은 생채기들을 남겼고, 서로 공감하며 공유해 본 적이 거의 없어 둘만의 시간은 너무 지루하고 길고 적막하다.
요즘은 동물병원 퇴근 길에서 허기를 느끼지 않고, 퀸사이즈의 넓은 침대에서 혼자자는 내 침실에서 허기가 진다. 어떻게든 오늘 밤은 넘겨보겠는데 새로 떠오를 내일 아침 해를 맞이 할 자신이 없다. 새로 내게 던져질, 지루하고 길고 긴 시간들을 대책없이 나를 포위해버리는 허기와 어쩔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을 감당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과연 무엇으로 막을 수 있으랴 과연 어떤 걸로 채울 수 있으랴
오늘의 허기와 어릴 적의 허기, 20대의 허기들은 그대로 전승되어 오는 것 같다
스펙트럼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어쩌면 나는 그런 기질을 타고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세상 누구라도 채워줄 수도 없다.
내 안의 구멍인 허기는 내 안의 방수공사를 잘해서 메꾸어야 한다. 나 혼자서도 충만할 수 있도록 자존감을 높혀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허기를 허기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좀 허허롭구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구나 써늘한 느낌이 나는구나'하며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허기랑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짓궂기도 하지만 좋은 동반자가 되어 함께 남은 인생길을 걸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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