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베낭을 메고 감천을 돌다

ANJOO 2020. 6. 22. 13:49

언젠가 동네 친구가 사준 연회색 베낭이 있다 길을 가다 '가방 모두 만원'이란 현수막을 보고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내가 그걸 맘에 들어하니 친구가 사주었다.내가 사도 되었지만 친구가 사주니 훨씬 의미가 있는 가방이 되었다.

 

 

 

그 가방은 나와 그 이후 1년이 넘도록 한몸이 되어 지냈다

50대 아짐마에겐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르나, 나는 그 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을 때도 등산을 갈 때도,

공부할 때도 놀러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다. 그 가방 속엔 지금 나의 소중한 것들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지금은 연회색이 황회색이 되어갈만큼 바래져간다.

그래도 난 그 가방이 좋다 나의 베프같다

 

지난 토요일 아침엔 사업차 볼일이 있어서 남편과 아침 일찍 감천에 가야 했다

그러나 설명하기 싫은 이유로 나혼자 길을 나섰다.

자가용을 이용하지 못하니 버스를 타고 가다 환승하고도 조금 더 걸어가야 했다

잘못하면 우울모드에 진입하려는 내마음을 그 가방이 바로 잡아 주었다

내 등에 바싹붙어 매달려 있으면서 내게'괜찮다 괜찮다 어쩌면 너 혼자 가면 더 재미난 일이 있을거야 자유롭기도 하고!'하며 가만히 등을 두드려 준다

 

먼저 96번 버스를 타고 대동고등학교 앞까지 갔다. 약간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어!  어! 이게 뭐지?' 버스에 오르려니 마치 모래사장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았다.

맨발이었다면 모래가 묻을 것만 같아 냉금 한발을 내딛기를 머뭇거리는데, 그 뒤로

'와~!!' 버스속에 파도가 넘실대는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파도를 서핑보드가 넘어가고 있었고 좌석들 밑으로는 바닷속 에서 올라오는 물방울들과 물고기들이 다보이는 듯 했다.  와~~! 좌석밑으로 파도가 밀려와 정말 두발이 다 젖을 듯했다

 

 

 

나는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핸드폰 셔터를 눌러댔다 버스 천정에는 맑은 하늘을 날아가는 갈매기들이 보였다

'신난다 재미난다!' 별로 좋지 않았던 아침의 기억과 기분은 다 날아가 버리고 정말 바닷가 파도 위에서 서핑보드를 타고 있느 기분이었다. 정말 그러고 싶기도 했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칭찬해주고 싶다 이런 반짝이는 배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기쁘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내 뒤에 앚은 아주머니 두분이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다

" 부산은 버스도 참 이쁘게 해 놓았다 어쩌면 바닷속 같네! 멋지다~"

괜히 나의 고향 부산이 자랑스러워져서 턱을 치켜 세우고 싶었다.

 

 

이런 버스를 '마린 버스'라 하는데 우리부산에 5대밖에 없단다. 그래서 이 버스를 타게 된 것은 행운이란다.

그리고 버스시승 사진을 블로거나 인스타에 올리면 경품도 준다한다

한번 해볼까 싶어서 그 버스를 내려서도 사진을 찍었다 블로거에 올려서 1등 상품을 타며 더욱 좋겠지?하며 신나는 상상을 했다

 

 

다시 17번 버스로 환승을 하고 나서 내렸더니, 햇볕은 나를 집어 삼길 듯 뜨겁고 기온은 높았지만 나의 베프 연회색 베낭을 메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갔다

걷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비록 볼일을 보기 위해 꽃단장했던 얼굴이나 옷이 땀과 먼지로 엉망이 되었지만 나는 당당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그 다음은 뭐하지?

일단 맛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일이 잘되기 위해 직접 홍보를 하러 다니기로 했다

'김밥선생'이라는 식당에서 '불짜장덮밥'을 먹은 후 베낭을 메고 감천을 걸어다녔다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베낭을 메고 땀을 흘려 가며 걸어서 감천을 걸어다닌 적이 있었었나?

남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한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고, 해서 즐겁고 좋으면 되는거지. 뭐가 또 필요한가

그래도 어느 한 업체에 들어가니 내 몰골이 어색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로 반기지도 않고 내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나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네 알겠습니다'하고 바로 나왔다. 더이상 이야기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전화로 홍보를 부탁하면 씩씩하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던 업체 사장님이 생각났다. 

그 업체는 여기서 두 정류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걷기로 했다 한번 실컷 걸어보자 싶어서 외모가 망가지든지 말든지 땀을 줄줄 흘러가며 베낭을 메고 감천을 걷었다.

그 사장님은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전화 했을 때마다 마찬가지로 반갑게 맞아주셨고

우리는 오랜동안 알고 있던 사이처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가던 손님이 요플레를 잔뜩 사와서 그것을 까먹어가면서 셋이서 즐겁게 대화를 했다.

아고고~ 3시간이 넘도록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다음에 또 봅시다 꼭요~하며 헤어졌다

 

 

어쩌면 나의 하루는 아침의 그 일때문에 창조된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남편과 같이 자가용을 타고 왔더라면 이토록 멋진 하루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다라는 생각까지 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소에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베프 연회색 베낭을 메고 감천 1동 유림아파트 앞에서 전에 한진철강이었던 철강회사가 아래로 펼쳐져 보이는 버스길을 걸어서 구평 초등학교를 지나 구평사회복지관까지 걸어갔다. 거기서는 지하차도 공사중이라  도로가 정신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버스에 올랐다.

 

 

 

 

다음엔 어디를 싸돌아다녀볼까? 종종 걸어야겠다

꼭 산이나 바닷가 아니라도 짜투리 시간만 나더라도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겠다.

나의 베프 베낭을 메고 말이다.

 

 

 

https://smartstore.naver.com/azale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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