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약간 경사가 진, 상가앞에 도로에 빗물이 졸졸 흘러간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은 코로나19로 풀죽었던 모습을 벗어 버리고
비를 맞으며 신이 났다
나이가 드니 가장 많이 생기는 감정이 양가 감정이다
비가 내려서 촉촉하고 차분하고 센티하고 좋은데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와 비내리는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복잡한 건 싫은데
치렁치렁 내 머리속은 여러 갈래 머리를 땋은 듯 바쁘기만 하다
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거의 없다
내 같아도 안오겠다 싶지만
그 사실이 제일 큰 머리땋은 가닥이 되어 나를 잡아 당긴다
어깨도 내려앉고 오래 앚아 있어 다리에 피도 안통하고 마음까지 바닥을 훑고 있다
혼자 커피 한잔으로 달래기가 힘든 순간인 것이다
비가 내리니 더 그렇다
비가 내리는 날은 따뜻한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코를 박고 엎어져 있거나
허기진 마음 대신 배라도 채울 일이 있기를 몰래몰래 바라고 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 톡톡거리지 않는 카톡
쉽사리 밥먹자 술 먹자 하기엔
다들 왜 그리 바쁠 것 같은지
내 마음이 침잠할수록 거절이 두려워 그냥 비만 바라보았다
아...이러다가 비처럼 울 것만 같아졌다
비대신 내가 울어주고 싶었다
안돼 안돼
더 이상 가라앉는 마음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30년 친구이 **에게 먼저 톡을 보낸다
'잘 있니? 내가 술 사줄게'
'그럼 내일 보자'
'내일부터 계속 시간이 없어 오늘 뿐이야 그럼 다음에 보자'
에구 실패했네 ㅋㅋ 다시 비만 바라보고 앉았다
잠시 후'밥은 먹을 수 있어 실은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 오늘 술 마실 자신이 없거등'
'그래? 그럼 그럴까?'
'밥은 내가 살게 뭐 먹고 싶어?'
눈에서 눈물이 났다 비오는 날 바닥으로 가라앉아만 가는 마음을 겨우 끌어안고 있는 사람에게
밥을 사준다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거기다가 뭐 먹고 싶냐는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30년 친구는 내가 우는지도 몰랐겟지만 톡으로 물어온 그말에
눈물보가 터져서 휴지를 네장이나 써야했다
'비싼거 먹어도 돼?'
'말해봐'
'장어구이'
'그러자 그것 먹자'
나는 '밥 사줄게 뭐 먹고 싶냐'는 말을 들어본지가 아득했다 음식값을 떠나서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내 배고픔을 알아주는 관심, 내가 뭐 먹소 싶은가 물어주는 관심에 목이 말라있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점점 더 많이 내렸다
우산을 쓰고 온 친구 어깨에도 빗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비오는 날 불러내서...
그래도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하고 장어를 맛있게 먹었다 고마운 친구와 함께.
좀 더 이야기를 추가한다면
길고 긴 이야기가 끝이 안나서 한방찻집에 가서 땅콩과 잣이 둥둥 떠있는 십전대보탕을 한사발씩 더 마셨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무엇인가? (0) | 2020.07.21 |
---|---|
인생의 코너를 돌며 (0) | 2020.07.02 |
베낭을 메고 감천을 돌다 (0) | 2020.06.22 |
요즘은... (0) | 2020.06.11 |
지난 두 달 동안의 시간들 (0) | 2020.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