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그리도 기다리던 휴가를 나왔다
지난 2월 입대하고 나서 3번째 나오는 휴가이지만 지난 번 휴가후 3개월만이다
맞이하는 사람들이야 3개월만에 또 나왔네하고 반응할 지도 모르지만
국방부의 시계는 잘간다하여도
막상 그곳에서 고되고 폐쇄된 군생활을 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그시간들이 하루하루 이겨내야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19라는 큰 장애물이 휴가를 더욱 방해해왔으니까 말이다
휴가일정은 4박5일이지만 최전방에 부대가 있기에
오고가는 시간을 빼면 알짜 휴가는 3일정도밖에 안되었다
아들은 한달전부터 버킷리스트까지 적어가며 이번 휴가를 기다려왔단다
휴가때 하고 싶었던 것은
1. PC방에 가서 실컷 게임하기
2. 자신이 직접 마파두부소스를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먹기
3. 당일코스지만 한 곳을 정하여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1일 여행하기
4. 친한 친구와 하루종일 수다도 떨고 함께 지내기
5. 평소 가족과 함께 먹고 싶었던 것 먹으러 다니기
등등
21살의 청년의 꿈으로는 참 소박하고 순수하고 이쁘다
아들은 휴가나온 첫날의 밤에는 정말 PC방에 가서 눈이 빨갛도록 게임을 하다가 새벽에야 들어왔다
고딩때야 잔소리를 폭포수처럼 내게 들었겠지만
성인이 된 아들, 그리고 버킷리스트의 제일 처음을 차지하는 소망을 이룬 아들에게
걱정은 됐지만 "들어가서 푹 자거라. 눈에서 피가 날 것 같으니 안약을 좀 넣는 게 좋겠구나"라고 말했다
둘째날인 오늘, 아들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황금 같은 휴가날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묵묵하게 아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늦은 오후에야 함께 반나절 여행을 시작했다
송도에 새로 생겼다는 용궁 구름다리에 가보기로 했다
남편은 아들에게 송도의 명물이 된 케이블카도 태워주고 싶다하였다
용궁 구름다리는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밖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여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구름다리 쪽으로 넘어와서
구름다리의 화려하고 멋있는 조명만 감상하다가 스카이라운지에 꾸며놓은 멋진 정원을 구경했다
케이블카 시승하는 곳에 주차한 차를 가지러 가기 위해
2키로가 족히 넘는 암남동 산책로와 송도 해변가를 걸어가며 반짝반짝 빛나는 송도 야경을 즐겼다
(코로나 19 감염방지를 위해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심해서 다녔다)
그다음은 영화관람을 했다
갑자기 보기로 한 영화의 얼마남지 않은 시작 시간 때문에 남포동까지 서둘러 가야해서
저녁식사도 간단하게 때우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맥도날드를 들러 야식으로 먹을 햄버거 세트를 집에 있는 가족수대로 사서 왔다
아들은 가장 편한 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평소 좋아하던 '빠니보틀'이란 전세계 여행기를 담은 유투브를 가족들과 함께 봤다
남편은 "아들은 니하고 싶은 거 다해라"라고 말했다
그말이 가슴이 팍 와 닿는다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이 충분히 해도 되고 할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욕구 충족을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이 힘들고 견디기 힘든 상황에 있거나 한껏 다운이 되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일들,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속으로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을
충분하게 안전하게 해보거나 분출할 수 있고
또 옆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 옆에서 묵묵하게 수용해주고 지지해준다면,
그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섣불리 그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지 않고
즉흥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혼자두고 뒤돌아 가지말고
이렇게 말해주어보자 '너하고 싶은 거 다해! 난 니편이야'
아들은 4박5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충분히 쉬고 먹고 이야기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지내다가
에너지 충전을 한껏 한 뒤에 기쁘게 귀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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