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전성기

ANJOO 2020. 11. 23. 12:11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2년전쯤 큰 동물병원이 생겼다

아니 그때는 20평정도의 규모였는데 1년도 지나지 않아서 40평으로 확장을 했다

그 병원은 거의 24시간 풀가동을 하는 것 같았고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이 지역에서 25을 넘게 살아왔다 매일 지나치는 아파트 정문이었는데 지금은 일부러 돌아서 후문으로 다닌다

왜냐하면...좀 아프기 때문이다

 

그 병원과 같은 업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 가는 내병원을 운명하면서

문정성시하는 그 병원앞을 지나가는 것은 한마디로 고통이다

그 앞을 지나는 느낌은 마치 여러명의 기자가 달려들어 내게 마이크를 내밀며

"지금 기분이 어떠시나요?'

"잘되는 병원을 보니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 당신의 병원과 비교하면 얼마큼 차이가 나나요?"

"당신의 병원이 기우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당신은 왜 손님이 없습니까?"라는 질문들의 쉴새없이 쏟아붓는 듯하다

자괴감이 들고 열등감도 올라오고 회피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너그러워질 때면 후배인 원장이 전성기를 누리며 잘하고 있는 모습이 장하고 흐믓하기도 하다

 

나에게도 전성기가 있었다

나도 이병원 원장 나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대는 내 병원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고 직원도 나를 포함하여 4명이나 됐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아침 9시부터 9시까지 근무하고 일요일만 쉬었고, 여름휴가는 이틀이상 가보지 않았다

덕분에 내 기준에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지금의 경제적 여유의 기반을 이룰 수 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음..한 5~6년쯤부터일 거 같다

스치는 바람결처럼 느껴지던 '병원이 기우는 느낌'이 점점 피부로 느껴지고

온몸으로 번지더니 마음속가지 파고 들게 되었다

나는 곪아서 화농한 상처를 긁어내고 새살이 나오도록 잘라내어 소독하고 깨끗이 봉합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내 상처는 내 문제점은 피가 뚝뚝 흘려도 약도 바르지 않고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덮어두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그것들은 속으로 파고들어가 곪고 번지고 주위조직까지 같이 죽어들어가게 한다

 

 

 

나는 그 상처와 문제의 원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데서 이유를 찾으러 다녔고

외면하고 싶어 다른 공부나 분야에 몰두했다

다른 전공의 대학에 늦은 나이로 편입을 하고, 졸업한 후에는 대학원에도 가고, 나라에서 인정하는 몇 안되는 자격증도 세개나 땄다

그래도 한번씩 돌아보면 치유하지 않은 나의 상처와 문제점들이 벌겋게 드러나 있었고 통증은 더해져 갔다

그때라도 한번 들여다 볼 걸... 그때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걸...

 

나는 내 잘못을, 내 과오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고쳐나가지 못하는 겁쟁이였고 비겁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다른 공부를 해도, 아무리 다른 곳에서 인정을 받아도 마음에 만족이 되지 못하고

자괴감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잠시도 나를 그냥 놔두지 못했다 그것을 잊지 위해서 분주하게 끊임없이 내달려야 했다

 

나는 올해 2월부터 또 다른 공부를 시작했고 또 다른 사업을 벌였다

여태까지 공부했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고 그사업에 올인하였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고,

단시간에 초보딱지를 뗄 수 있을만큼 경험하고 지식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리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스톱~~~~~~~~~~~~~~~~~

누가 뭐라고 해도 멈출 수 없던 나의 폭주하는 기관차를 내 스스로 멈추었다

나는 내게 물었다

"너 왜그러니? 너를 무엇이 그렇게 달리게 하니? 너는 무엇이 겁나는 거니? 잠깐만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아봐..."

세수하고 마주앉은 큰 거울 앞에는 내 자신도 낯설은 내가 앉아 있었다

그동안 옆도 뒤도 안보고 폭주하느라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육체가 흉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이빨이며 갑상선이며 무릎관절이며 뱃살이며... 그 어느 거 하나 정상적인 게 없는 듯했다

 

나를 용서하자

나를 받아들이자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병원이 기우는 것이 오로지 내 잘못 만은 아니다

나도 참 수고많이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도 병원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수도 있다

받아들이자 나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지금은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나의 전성기때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놓친 게 정말 많았다

아쉽고 힘든 게 너무도 많아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 때가 많았다

나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병원이 기울어 돈은 많이 못 벌고 있지만, 그 대신에 많이 남는 시간으로 하고 싶었던 심리학도 공부하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사업도 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전성기가 아니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전성기'가 아닌 것도 아니다

나의 '수의사'라는 직업에서의 전성기는 이미 가버렸는지는 모르나,

나의 제2위 인생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전성기'라는 특별한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매일이 새롭고 즐겁고 신나는 전성기라는 걸, 전성기는 내가 만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살았고 나름 최선을 다했고 병원도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맙다 나의 천직!나의 소중한 동반자인 병원아!

앞으로도 지금의 내게 맞게 보조를 맞추며 나와 가장 잘 어울리게 지내보자~

 

 

 

 

 

 

https://smartstore.naver.com/azalea5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티나무와 덩굴나무  (0) 2021.03.23
나는 왜 태어났지?  (0) 2021.02.06
새벽에 쓰는 연애 편지  (0) 2020.11.14
니하고 싶은 거 다해~  (0) 2020.11.01
첫눈에 반한 집의 어떤 사연  (0) 2020.10.15